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플라비우스 아에티우스 (문단 편집) === 갈리아에서 === 이후에 그는 본거지인 갈리아를 재평정하기 시작했는데 서기 436년, [[부르군트족]]의 왕인 군터와 싸워 그를 격파하고 평화협정을 강요했다. 다음해 아에티우스는 평화협정을 무시하고 훈족의 병사들을 보내 20,000여 명의 부르군트족을 살해했다. 서기 437년에는 집정관에 선출되었고 438년엔 [[수에비]]족 및 [[서고트 왕국|서고트족]]과 싸워 이들을 무찌르는 등의 군사적 성과를 거두어 이탈리아에 그의 동상이 세워지는 영예를 누리게 되었다. 443년에 아에티우스는 자신이 격파한 뒤 장악한 부르군트족을 [[제네바]] 호수 근처에 정착시켰고[* 이들은 훗날 [[스위스]]인들의 조상이 되는 헬베티아족과 치열한 싸움을 벌인 부르고뉴인들이 된다.] 그밖에도 복속시킨 [[알란]]족과 오르레앙족을 각각 갈리아 동부와 갈리아 서부 [[노르망디]] 지역에 정착시켰다. 또 450년에는 [[프랑크 왕국|프랑크]] 왕이 죽은 후 벌어진 그의 아들들의 계승분쟁에 개입하여 그중 한 명을 양자로 삼고, 로마로 보내는 등의 활동을 했다. 그는 이런 식으로 갈리아의 게르만 족을 복속시키는 데 성공했지만 이는 훈족의 새로운 왕 아틸라의 경계를 받기에 충분한 것이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